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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삶을 살아간다.

by 악마고양이 2026. 5. 8.

암과 함께 삶을 살아간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살면서 어떤 질병에 걸릴까 하고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가 태어나는 가정을 직접 고르면서 , 나 좋은 가정 잘 사는 집에 태어나고 싶어 하면서 결정을 하면서 , 정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나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하고 결정을 할 수는 있는데 인생에서 결정을 해도 내 결정한 

선택대로 삶이 흘러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삶이 정말 싫어 하고 부정을 하기에는 즐거운 일, 슬픔일, 어려운 일 등등 다채롭게 찾아오고 그 고비를 넘겨

살아가면 삶의 긴 터널에서 내려 놓은 방법도 삶을 가볍게 느끼는 부분도 생긴다. 

간단히 이야기 하면 나 또한 삶을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암과 삶을  살았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암과 함께 삶의 중반을 살아가고 있다.

암과 함께 삶의 중반을 시작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무슨 이야기 인가 싶겠지만 나는 35살이 되기 전에 사람이 무슨 암에 걸리는지 모르고 , 암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35살이 되어서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순간이 되면서, 사람들이 알지도 모르는 병들이랑 수 없이 싸움을 하고 이겨 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늦게 치료를 해서 삶을 놓아야 하는 순간을 찾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과  인간에 삶에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병

없이 살다가 편안하게 잠을 자다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흔히 , 병원에서 일을 하시는 의사 선생님들도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질병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몰라하고 생각하는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죽음! 아마 내가 언제 이렇게 심각하게 깊숙하게 생각을 해 봤나 싶었는데 아마 내가 첫번째 걸렸던 그 갑상선암 4기 진단을 받고 , 내가 삶이 별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 보다. 그 갑상선 암이 걸렸다고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는 막막하고 , 아들이 걱정이 되었고 남아 있을 엄마, 오빠, 언니의 슬픔이 걱정이 되었다. 

죽음이 아프지 않을까하는 걱정보다. 내가 가면 남아있을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잘 성장하고 잘 살아갈까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들을 잘 돌보아 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근데 지금 내가 삶을 놓지 않고 버티어서 견딘 지금 아들 때문이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아프다고 말을 해도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화가 났고 , 그래서 아들이 걱정이 되어서 참고, 항암치료를 버텼다. 남편에 태도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내가 현재 남편과 이혼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남편은 갑상선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고 병실에 왔는데도 나이가 36살인데 철이 없어도 옆에서 만화책을 빌려다 보던 그런 사람이다. 나라면 얼마나 아프니 하고 말을 하면서 치료하면 좋아질 거야 하고 말로 위로를 했을 것이다. 가끔 남편이 내가 다양한 암에 걸렸을 때 죽기를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나는 35살에 갑상선 암을 걸렸고 삶을 견디고 치료에 견디면서 몸을 회복하고 삶을 회복을 찾아 가면서 남편 때문에 많은 일들을 겪어가며 이겨낸다. 남편은 경제관렴이 상관이 없이 항상 빛을 만들어서 스스로 갚지 못해서 신용위원회 및 개인회생이나 월급에 차압이 들어오는 것이 많아서 남편이랑 29년 살면서 남편의 월급에서 빛을 갚는 시간이 10년이 걸렸고 그러면서 나는 암이 걸리면서도 치료가 끝나면 항상 알바 및 직장을 다녀서 생활비를 매워가야 했다. 아직 남편 때문에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이야기를 나는 현실에서 겪어 보았다. 집 앞으로 사채 업자가 찾아와서 돈을 값이라는 경우도 있었고 남편이 직업군인인데 아들과 나도 모르게 혼자 부대 전출 명령을 받아서 한 달 넘게 소식 없이 부대를 바꾸어서 출근을 하던 그런 인간이 덜 된 사람이었다. 나는 기억하기 싫지만 말을 하는 것은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남편을 고르는 부분에서 남자의 경제관렴을 잘 알아보고 결혼을 결정을 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보면 정말 부끄럽겠지만 , 나는 남편 때문에 친구들과 관계에서 항상 약자가 되어서 무시를 당하는 쪽에 있었다. 남편에 빛 때문에 생활비도 모자른 탓에 항상 부모님께 도움을 받거나 , 알바를 했고 , 지금 기억에 아들에 초등학교 체육대회에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친구들이 유행이 지난 청바지를 주면 받아서 입었다. 그때는 내가 말랐고 내 물건을 살 돈이면 아들 옷을 사주는 것이 나았다. 형편이 너무 안 좋았다.

빨강머리 앤 한장면

 

나는 35살에 갑상선 암과 싸우고 40살에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우연히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다 자궁경부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2번에 정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2달이 지나서 다시 일터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감기로 바뀌는 24년도에 침샘 암에 걸렸고, 22년도에 담석암 수술을 받았다. 내가 너무 많이 아픈 것을 보던 15년 이상 다녔던 일산병원 

의사 갑상선 담당 의사 선생님이 결혼생활을 정리를 하는 것이 당신이 스트레스 안 받고 오래 살수 있는 방법 같다고 웬만하면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조언을 해 주신적이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는 암과 함께 삶을 살아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 암에 걸렸고 치료를 했고 견디면서 아들을 지켜가고 내 삶의 꿈을 꾸면서 , 암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더 나쁜 암이 나를 찾아오지 않기를 기도를 하면서 맨날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 내가 하고픈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을 해 보고 , 지금 내가 35살에 갑상선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써 놓았던 버킹리스트를 몇 개 실현을 했나도 생각을 하면서 암과 함께 

삶을 살아 간다는 것은 생존을 위함이며,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고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드라마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암과 함께 살아 가면서 결론으로 

암을 무서워 하지 말자.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인생이 무너지고 하늘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면서 

왜 나만 걸려 하면서 ,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 두렵기도 할 것이다. 죽음에 신이 당신 앞에 서 있을  까봐 

근데 그 죽음에 신을 직시 하기 전에 당신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 해서 노력을 해 보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죽음에 신은 누구에게나 찾아 간다. 다만 언제 찾아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즘은 운이 나빠도 죽음에 신이 앞에 와 있을 수 있다. 교통사고 및 화재 비행기 추락 등등 예상외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암을 여러번 겪으면서 , 한편으로 의술을 믿고 , 다른 한편으로 죽음에 신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하고 마음으로 밀기도 하고 , 마음으로 수술이 끝나면 나가 하고픈 버킹리스트를 다시 작성을 해 보았다. 짧은 시간에 빠르게 실천을 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작성을 해 보고 수술이 끝나고 , 현실에 다시 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옆에 있는 누구도 보지 않고 내 버킹 리스트를 실천하려고 죽어라 노력을 했다. 항상 제자리기는 해도 한 가지 버킹리스트에서 아들이랑 한국에 여러 도시를 자동차로 돌아다녀 보았다. 그리고 강원도에 월세 1년을 얻어서 아들이랑 매주 주말마다 같이 추억을 만들어 보았다. 

나는 암과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된것 같다. 

암을 무서워 하기 보다 무엇이 먼저 나에게 중요하고 실천해서 그 순간을 행복해라고 말을 해 주고 싶다.

35살에 나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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