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결혼생활을 끝내며 깨달은, 남편 고르는 법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을 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 서고 나서야, 그리고 그 숨 막히는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눈이 뜨였다. 연애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수많은 조건들이 결혼 생활을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남편과 부부로 살며 내 삶은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군인 월급 차압과 개인회생,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들던 시댁의 병원비와 사채업자들의 숨 막히는 독촉까지. 그 지독한 경제적 파탄 속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도움을 요청할 곳 하나 없는 환경적 고립 속에서 홀로 독박 육아까지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은 매일이 피눈물이었고 지옥이었다.
그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지나온 시간 끝에, 내가 만약 다시 누군가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혹은 내 소중한 사람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반드시 이 조건들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1. 갈등과 위기 앞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은 절대 고칠 수 없다
사랑할 때는 누구나 다정하다. 진짜 모습은 싸울 때, 그리고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나온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기는커녕 입을 닫고 도망치거나, 뒤로 숨어버리는 남자는 절대 피해야 한다.
내 전남편은 이기적인 인간 그 자체였다. 자기가 사채를 쓰고 카드빚을 지며 사고를 칠 때마다 무서워서 뒤로 숨어버렸고, 결국 사채업자를 마주하고 비참하게 뒷수습을 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아이가 겨우 네 살 때,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연락도 없이 며칠을 들어오지 않았다. 말일이라 돈은 한 푼 없는데 시댁은 "네 신랑 다른 부대 전출 갔다니 찾아가 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네 살짜리 아들을 업고 부대를 찾아가 연대장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감봉 처리를 당하면서도 아이를 봐서 한 번만 봐달라는 말에 감사하다고 빌며, 울면서 군부대 연병장을 걸어 나오던 그날의 비참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겨우 찾아간 전남편은 사채업자가 무서워 바로 나오지도 않았다.
진짜 좋은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아내와 자식을 방패막이로 삼지 않는다. 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보증인 싸인 하나 하러 오지 않던 그 인간을 보며 깨달았다. 가족을 현실이 아닌 남처럼 대하고, 위기 앞에 도망치는 비겁한 자는 절대 남편이 될 자격이 없다.
2. '효자'와 '마마보이'는 한 끗 차이다, 방관자는 결국 가해자다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귀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는 재앙이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이다. 중심이 단단하여 내 가정을 1순위로 지켜낼 수 있는 '진짜 어른'을 만나야 한다. 시댁 갈등 사이에서 그저 방관자로 남는 남자는 남편의 자격이 없다.
내 전남편은 언제나 내 편이 아닌 시댁의 철저한 방관자이자 동조자였다. 남편이 친 사고로 월급에 차압이 들어와 생활비가 늘 모자랐고, 나는 주말도 없이 꽃가게 알바를 하며 버텨야 했다. 당장 쌀 살 돈도 없이 지갑에 단돈 5만 원이 전부였던 어느 주말, 시댁 제사에 못 간다고 하자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돌아가며 내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막말을 퍼부었다.
지옥 같은 현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말은 기가 막혔다. "알바 그만두고 제사 가면 되잖아." 당장 아들과 아내가 살아갈 방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시댁에서 자기 체면 깎이지 않는 것만 중요한 인간이었다.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생활비 차압 때문에 영아가 고생하며 일하고 있으니 이번엔 내가 혼자 가겠다"라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될 일이었다.
결국 무리한 노동과 스트레스로 하혈을 시작했고,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수술대 위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암 수술을 받고 고통스럽게 회복하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온종일 잠만 자는 괴물이었다. 본성은 착하다는 말, 다 거짓말이다. 가족을 방패막이 삼아 뒤로 숨는 인간의 본성 안에는 잔인한 악마가 살고 있다. 내 가정을 지킬 줄 모르는 마마보이는 남의 집 귀한 딸의 영혼과 몸을 처참하게 갉아먹을 뿐이다.
3. 생활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책임감'이 있는가
결혼은 현실이다. 매일의 가사, 육아, 그리고 경제적 생계라는 무게를 함께 짊어질 동반자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남자는 결국 아내를 가장으로, 독박 육아의 노예로 만든다. 힘든 일이 생기면 회피하고 도망치는 인간은 결코 가장이 될 수 없다.
내 전남편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핑계와 기만으로 포장하는 자였다. 은행 빚, 카드 빚, 사채도 모자라 월급 차압까지 사건이 커질 때마다 그는 훈련이나 부대 전출을 핑계로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마법을 부렸다. 날아오는 독촉장과 사채업자를 감당하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빚잔치를 하기 위해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서야 결혼식을 올렸고, 하객들의 부조금으로 그의 뒷감당을 해야 했다.
심지어 내가 자궁경부암에 걸려 수술을 해야 했을 때도 그는 곁에 없었다. 첫 수술 동의서에는 고등학생이던 어린 아들이 벌벌 떠는 손으로 사인을 했고, 두 번째 수술은 내가 직접 사인을 하고 들어갔다. 훈련 기간이고 수술 시간 짧으니 괜찮지 않냐던 그의 무신경한 말은 칼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아들이 보다 못해 안방의 내 짐을 건넌방으로 옮겨주며 우리는 서류상으로만 부부인 남남이 되었다. 그러다 결국 그는 대책 없이 군대를 그만두고 연금 수령액까지 속이다 못해 내게 이혼을 요구했다.
누군가는 내게 "왜 그렇게 미련하게 참고 살았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아들의 미래와 대학 학비, 독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은 열어주어야 했다. 내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들이기도 하기에,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인간을 방패막이로 버티며 나는 차곡차곡 독립을 준비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자격증을 따고 전문성을 키워 내 커리어를 쌓았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마침내 독립하는 그날, 나는 미련 없이 이 지옥 같은 연극을 끝마쳤다.
4.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정서적 안정감'이 최고의 축복이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큰 축복은 '평온함'이다. 같이 있을 때 내 마음이 물 흐르듯 편안하고 내일이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진짜 좋은 남편이다. 하지만 내 결혼 생활은 늘 남편이 친 빚더미와 시댁의 폭언으로 몸과 마음에 피고름이 짜이는 지옥이었다.
최근 답답한 마음에 찾은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원은 나를 보며 "언제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라며 상담치료를 권했다. 실제로 죽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대로 죽으면 그 인간과 이혼도 못 하고 죽는 것인데, 그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 반드시 완벽하게 정리하고 내 권리를 다 찾은 뒤에 보란 듯이 살아낼 것이다.
30년을 직업군인으로 산 남편은 퇴직 후, 내가 억지로 사두었던 시골의 7300만 원짜리 작은 빌라 한 채를 던져주며 이 연극을 끝내자고 요구한다. 3년째 생활비 한 푼 주지 않았으면서, 빌라 명의가 내 명의니 공과금과 가전 렌탈료를 내라며 "내가 호구냐"라고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른다. 빌라를 줄 테니 퇴직금과 군인연금은 자기가 다 갖겠다는 해괴한 조건을 걸면서 말이다.
내가 법을 모르는 바보인 줄 아는 모양이다. 남편의 30년 군 생활 중 29년을 함께 피눈물 흘리며 버틴 아내에게는 법적으로 정당한 '군인연금 분할청구권'이 있다. 평생 월급명세서 한번 보여주지 않고 속이는 것이 주특기였던 인간의 마지막 발악일 뿐이다.
자식이 4년제 대학에 합격했을 때 고함을 지르며 2년제나 가라고 초를 치던 아비, 내가 출근하고 없으면 아빠가 보기 싫어 할머니 댁으로 도망치던 아들의 상처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퇴직 후에는 겨우 스무 넘아 사회 초연생 된 아들에게 "네가 가장 해라"며 책임을 떠넘기던 비겁한 인간. 나는 그 인간의 향해 소리쳤다 똑바로 말했다. "정신 차려. 네가 가장이야. 자식에게 짐이 되지는 말란 말이야!"
결론: 힘겨운 결혼생활을 끝내며 깨달은, 나를 찾는 법
길거리의 평범한 젊은 부부들을 볼 때, TV 속 서로 아껴주는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서글픈 눈물이 고였다. '내 인생은 왜 저렇게 행복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그 후회라는 단어도 같이 삶을 살아가는 상대와 즐거운 추억이 많아서 같이 회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눔이 가능할 때 후회를 한다. 나는 그 지옥 같은 사채업자들과 빚더미 속에서도 자격증을 따며 독립을 준비했고, 기어이 내 아들을 바르게 키워냈다.
나의 결혼 생활은 그 자체가 전쟁같은 나날이었고 , 내 아들을 성장시키려고 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면서 나 또한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들에게 미안하고 , 그래서 더욱 나는 결심을 한다.
이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 안 된다는 현실을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써 내려 가는 것은 내 경우를 보고 남자 친구, 남편을 고르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함부로 만나서도 안돼며, 한순간 선택이 인생을 험한 파도 속에 던질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남자, 남편을 고르는 법이 아니고 인생의 상대를 고르는 누든지 속하는 이야기이다.)
배우자를 잘 고른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과 함께할 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가'를 보는 일이다. 30년 동안 그 인간의 아내로 살며 나는 몸과 마음에 암을 얻고 나다움을 잃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비록 내 선택의 대가는 참혹했으나,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단단하고 위대한 어머니이자 여성인지 깨달았다. 힘든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와 추악한 인간에게 마지막 이혼을 준비하는 나 자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남편이 아닌, 오롯이 '나의 행복'을 고르는 진짜 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찾는 방법을 위해
여기 까지 내 이야기를 쓰면서 무수히 생각을 했다. 남들에 시선을 근데 잘 쓴 것 같다.
왜냐면 이것으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 남은 아들을 위해
